B코스
 현재위치 : 메인화면 > B코스       
 

골굴사
기림사의 사적기에 의하면, 약 1500년 전 천축국(인도)에서 건너온 광유성인 일행이 함월산 지역에 정착하면서 골굴사와 기림사를 창건 하였다. 통일신라시대 원효대사에 의해 크게 중창되어 기림사로 사명이 개칭되기 전에는 임정사라고 하였으며 오종수(감로수, 화정수, 명안수, 오탁수, 장군수)의 설화를 전하고 있다. 또한 불국사보다 약 200년이 먼저 창건 되었다. 골굴사는 당시 광유스님 일행들이 자국의 사원양식을 본따서 창건한 전형적인 석굴사원이다.

응회암 지층으로 형성된 암반정상에 마애불을 조성하고 주변에 12처의 석굴을 파서 목조기와로 전실을 부조하여 법당과 요사로 사용했다. 여러개의 동굴군으로 형성된 석굴사원은 우리나라에서는 이곳이 유일하지만 중국이나 티벳,인도 등지에서는 고대 석굴사원의 유적이 많이 전해지고 있다. 골굴사는 신라시대 불교가 처음 유입될 당시 신라인들의 호국불교 정신과 정토적인 이념을 배양한 정신문화의 산실로서 경주 함월산 유역의 성지로 유서깊은 도량이다.

조선중기의 화가 정선의 골굴 석굴도에도 여러개의 기와기붕으로 지어진 석굴의 전실이 가람을 이루고 있다. 또한 토함산 산중일기를 쓴 정시한 선생의 기행문에도 당시 골굴암의 모습을 상세히 전해주고 있는데, "여러채의 목조기와로 지어진 전실을 연결하는 회랑이 있고 단청을 한 석굴사원의 모습은 마치 한폭의 병풍을 보는것처럼 아름답다" 고 표기하고 있다.일부 사학자들의 말을 빌리면 조선 중후기에 화재로 인해 소실된 것으로 추중되며, 그후 사람이 살지 않은 상태로 방치되어 오다가 약 70년전에 박씨 일가가 상주하면서 태고종에 등록된 사설사암으로 전해 왔었다.1989년도에 개인에게 매매된 것을 당시 기림사 주지를 역임한 설적운 스님이 다시 매입하여 대한불교 조계종 11교구 골굴사로 등록하여 등기이전 됨으로써 현재는 불국사의 말사이다. 주불인 마애불은 보물 581호 지정되어 있으며 동해안의 문무대왕수중릉을 향해서 조성되었으며 관음굴, 지장굴, 약사굴, 라한굴, 신중단 칠성단, 산신당 등의 굴법당이 있고 특히 수천년 전부터 전래된 남근바위와 여궁의 음양조화로 득남을 기원하는 민간신앙이 간직 된 설화가 유명하다.

골굴사 마애여래좌상
머리 위에는 육계가 큼직하게 솟아 있고 얼굴 윤곽이 뚜렷하다. 타원형의 두 눈썹 사이로 백호를 상감했던 자리가 둥글게 파였다. 두 눈은 멀리 동해를 내려다보고, 귀는 어깨까지 내려오고, 가는 눈엔 잔잔한 웃음이 머물고, 굳게 닫힌 입술에는 단호한 의지가 서려 있다. 입체감이 뚜렷한 얼굴에 견주어 신체는 다소 평면적이다. 왼손 엄지와 검지 손가락을 짚어 배 앞에 놓고, 오른손은 파괴되었으나 본래 무릎 밑으로 땅을 짚어 마귀를 항복케하고 선도하던 순간을 나타낸 것이 확실하다. 머리 뒤엔 연꽃이, 후광에는 가늘게 타오르는 불길이 새겨져 있으며, 옷주름은 물결치듯 한방향 으로 조각되었다. 세련되지 못한 옷주름 때문에 학계에서는 이 마애불상을 삼국 시대의 작품으로 보기도 한다. 한편, 평면적인 신체와 수평적인 옷주름, 겨드랑이 사이의 V자형 옷주름들이 9세기 후반에 만들어진 철원 도피안사와 장흥 보림사의 불상과 비슷해 통일신라 후기의 작품으로 보기도 한다. 오랜 비바람에 석회질 암석이 마모되어 오른쪽 귀는 이미 떨어져나갔고 가슴 위도 벗겨져버렸다. 무릎 부분도 무너진 상태일 뿐만 아니라 풍화 작용으로 균열이 심해질 것이 불을 보듯 뻔하여 안타깝다. 보물 제581호 이다.

 

총접속 : 68,175
오늘 : 3 어제 :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