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코스
 현재위치 : 메인화면 > B코스       
 

감은사터
동해의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겠다고 한 문무왕은 생전에 직접 대왕암의 위치를 잡고, 대왕암이 바라다보이는 용당산을 뒤로 하고 용담이 내려다보이는 명당에 절을 세워 불력으로 나라를 지키고자 했다. 삼국을 통일하고 당나라 세력까지 몰아낸 문무왕이었지만 당시 시시때때로 쳐들어와 성가시게 구는 왜구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가 아닐 수 없었다.

이에 문무왕은 부처의 힘을 빌어 왜구를 막겠다는 생각으로 동해 바닷가에 절을 짓게 된 것이다. 감은사탑은 종래의 평지가람에서 산지가람으로, 고신라의 일탑 중심의 가람배치에서 쌍탑일금당으로 바뀌는 과정에서 보이는 최초의 것이다

즉 동서로 두 탑을 세우고, 이 두 석탑 사이의 중심을 지나는 남북 선상에 중문과 금당, 강당을 세운 형태이다. 중문은 석탑의 남쪽에, 금당과 강당은 석탑의 북쪽에 위치한다. 회랑은 남.동.서 회랑이 확인되었고, 금당 좌우에는 동.서 회랑과 연결되는 주회랑이 있다. 이는 불국사에서도 볼 수 있는 형식이다. 또한 중문의 남쪽으로 정교하게 쌓은 석축이 있으며, 이 석축의 바깥으로는 현재 못이 하나 남아 있다. 이를 용담이라 부르는데. 통일신라 당시 감은사가 대종천변에 세워졌고 또 동해의 용이 드나들 수 있는 구조로 만들어진 것이라면 이 못이 대종천과 연결되어 있고 또 금당의 마루 밑 공간과도 연결되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을 가능하게 한다. 금당의 바닥 장치는 이중의 방형대석 위에 장대석을 걸쳐놓고 그 위에 큰 장대석을 직각으로 마치 마루를 깔듯이 깔고 그 위에 초석을 놓게 한 것이다. 그리하여 장대석 밑은 빈 공간이 되도록 특수하게 만들었다. 금당터 주변에는 석재들이 흩어져 있다. 금당터 앞의 석재 중에는 태극무늬와 기하학적인 무늬가 새겨진 것이 눈에 띄는데 언뜻 보기에도 예삿돌은 아니고 금당이나 다른 건물에 쓰였던 석재임이 확실하다. 절터의 금당 앞 좌우에 서 있는 삼층석탑은 통일신라 시대 때 만들어진 것으로 현재 남아 있는 삼층석탑 중에서는 가장 큰 것이다. 대지에 굳건히 발을 붙이고 하늘을 향해 높이 솟아오른 두 탑은 크기로 보나 주위를 압도하는 위엄에 있어서나 통일신라를 대표하는 멋진 탑이라 단정하는데 이의가 없다. 통일된 새 나라의 위엄을 세우고 안정을 기원하는 뜻에서 감은사가 지어졌듯, 그같은 시대정신은 웅장하고 엄숙하며 안정된 삼층석탑을 낳게 하였던 것이다. 감은사탑은 튼실한 2층 기단에서 3층의 탑신을 올리고 지붕돌(옥개석)의 끝이 경사를 이루는, 통일신라 7세기 후반 석탑의 전형적인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금당 뒤쪽 대숲을 지나 언덕에 오르면 절터와 주변 경치가 어우러진 속에 장엄하게 우뚝 솟은 탑을 볼 수가 있다. 대종천 건너 아래쪽에서부터 두 탑을 올려다보는 것도 또 다른 멋이 있다. 감은사터는 사적 제31호 로 지정되어 있다

감은사터 동서 삼층석탑
기운차고 견실하며, 장중하면서도 질박함을 잃지 않는 이 위대한 석탑은 동서로 마주 보고 있는 삼층탑으로 화강암 상하 2층 기단위에 3층으로 축조되었다. 신문왕 2년(682), 축조 연대가 확실한 통일신라 초기의 작품이다. 이 석탑의 가장 큰 특징은 기단부와 탑신부 등 각 부분이 한개의 통돌이 아니라 수십개에 이르는 부분 석재로 조립되었다는 점이다. 하층 기단은 지대석과 면석을 같은 돌로 다듬어 12매의 석재로 구성하였으며 갑석 또한 12매이다. 기단 양쪽에 우주가 있고 탱주가 3주씩 있다. 상층 기단 면석 역시 12매에 갑석은 8매로 구성되었으며 2주의 탱주가 있다.

탑층부의 1층 몸돌(옥신)은 각 우주와 면석을 따로 세웠으며 2층 몸돌은 각각 한쪽에 우주를 하나씩 조각한 판석 4매로, 3층 몸돌은 1석으로 구성하였다. 지붕돌의 구성은 각층 낙수면과 층급받침이 각기 따로 조립되었는데 각각 4매석이므로 결국 8매석으로 구성되는 셈이다. 층급받침은 각층 5단으로 짜여졌고 낙수면의 정상에는 2단의 높직한 굄이 있으며 낙수면 끝은 약간위로 들려져 있다. 3층 지붕돌 위부터 시작되는 탑의 상륜부에는 1장으로 만들어진 노반석이 남아 있고 그 이상의 부재는 없으나, 현재 약 3.9m 높이의 쇠로 된 찰주가 노반석을 관통하여 탑신부에 꽂혀 있다. 석탑의 전체 높이는 13m로 우리 나라 삼층석탑 중 규모가 가장 크다. 찰주를 빼면 높이가 9.1m로 고선사탑과 비슷한 높이가 된다. 그러나 찰주가 없는 고선사탑에 견주어본다면 이 찰주로 인해 석탑이 갖게 되는 상승감의 의미를 알게 될 터이다. 탑의 완성도를 결정하는 것은 안정감과 상승감이라는 두 가지 요소이다. 감은사터 삼층석탑은 이 두가지 측면에서도 성공을 거두고 있다. 3개의 몸돌을 실측해보면 그 폭이 4:3:2가 아닌 4:2:2로 나타난다. 곧 1층 몸돌이 2,3층에 비해 월등히 높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이것은 사람의 눈높이에서 보는 착시를 감안한 것으로 만약 정상적인 체감률을 따랐다면 지금과 같은 상승감은 보지 못하였을 것이다. 감은사탑은 국보 제112호 로 지정되어 있다. 1959년 감은사탑을 해체 수리하는 과정중 서탑 3층 몸돌의 사리공에서 임금이 타는 수레 모양의 청동 사리함이 발견되었다. 정교한 연화문 받침에 57*29.5cm, 깊이 29.1cm 크기의 함을 놓았으며 함의 네모서리에는 팔부신장이 새겨져 있고 각 좌우에 귀신 얼굴의 고리가 있다. 화려하고 섬세한 예술감과 간절한 종교적 감성이 한데 어우러진 이 사리함은 보물 제366호 로 지정, 지금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총접속 : 68,175
오늘 : 3 어제 : 7